Page 23 - 2019년 9월 맑은샘-홈페이지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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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화 소개



        <이타미 준의 바다 The Sea of Itami Jun>                  ………………… <2019 정다운>


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937년 도  아늑하게 구현한 포도호텔, 산방산이 마주보이는 곳에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쿄에서 태어     산의 모습에 조응하듯 지어놓은 두손박물관, 콘크리트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나 후지산이     에 이끼가 끼어가고 적송의 색이 바래가며 철판에는 붉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보이는 바닷     은 녹이 스는 외장재의 변화(혹은 노후)과정까지 건축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가 마을에서     미학으로 풀어낸 수풍석박물관 등이 그것이다. 이는 벗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자랐지만 평     나무를 자르지 않고 설계를 변경하여 건축 재료로 이용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생을 한국인     한 1997년 작 ‘먹의 공간’에서 그 땅의 주인이 되어 만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으로 살다 간    개한 벚나무와 어느덧 검게 변한 대나무 파사드(건물외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건축가가 있     벽)의 생로병사를 대비시켰을 때부터 이타미 준의 건축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었다.  감독    을 규정하는 특별한 요소가 되었다. 또한 그의 건축 구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은 한국에서     조는 소유가 아닌 공유를 기본 값으로 누리며 한옥에서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는 재일교포     살던 선비의 정신과도 닮았다.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로 일본에서      십 년을 계획하여 초가삼간을 지어내니/ 나 한 간, 달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는 조센징으           한 간, 청풍(淸風) 한 간 맡겨 두고/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로  매년  지     강산(江山)은 들여놓을 곳 없으니 둘러놓고 보리라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문날인을 하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풍경을 담는 액자와 같은 한옥의 창. 그 창에 담겨진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며 살면서 훗    자연을 소유하지 않고 빌려서 즐기는 차경의 예술(임석
        날 사무소를 등록하기 위해 이타미 준으로 개명할 수
        밖에 없었던 건축가 유동룡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풀어         재의 ‘한옥미학’中)을 이타미 준은 제주의 풍요로운 자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연 안에서 자유롭게 표현했다. 지붕이 뚫린 원형 건축
        냈다. 4월 개봉한 다큐멘터리<안도 타다오>가 건축물들       물에 야트막하게 물을 담은 水박물관. ‘ㅁ’자 한옥이 마
        의 나열로 경쾌한 리듬을 형성해 그의 철학을 담아냈다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당을 통해 자연과 연결되듯 그 곳에서 우리는 맑은 하
        면 <이타미 준의 바다>는 경계인으로서의 삶이 그의 건       늘을 흘러가는 구름이나 수면 위로 툭 툭 떨어지는 빗
        축을 어떻게 완성시켰는지를 그와 함께했던 주변인들
        인 두 딸(한국인인 큰 딸과 일본인인 둘째 딸), 첫 번째     방울을 통해 콘크리트 속에서 자연과 조우한다. 風박물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관의 나무뼈대 사이로 바깥을 보면 검은 현무암을 포
        건축주, 건축가 반 시게루 등을 등장시켜 스크린에 투        근히 안은 푸른 풀잎들이 춤을 추고, 어느새 들어온 바
        영한다. 이를 통해 그의 정체성을 보여 주어 관객과의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람과 빛은 건물내부에서 자유로이 노래를 부른다. 심
        거리를 좁히고 대상에 어떤 정서를 부여한다 점은 안         지어 내부에서 건물의 3면을 감싸고 있는 水공간이 보
        도 타다오의 발랄하지만 건조한 다큐멘터리와 차별성
        을 가진다. 또, 한 번 둘러보고 마는 여행객의 시선으로      이도록 설계된 교회를 한라산 중턱에 앉혀 놓고, 차경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을 통해 물 위에 뜬 방주 안에서 예배드리는 효과를 줌
        는 포착하기 힘든 이타미 준 고유의 건축적 시간성을 8       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을 더 잘 연결하려 시도하기도 한
        년의 제작기간을 통해 구현해 냈다는 점은 이 영상물의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다. 그래서 이 건축물들은 굳이 담 안에 정원을 만들지
        중요한 성취이다.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않고, ‘들여놓을 곳 없는 江山은 둘러놓고’ 즐기던 조선
         그런데 평생을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경계인으로 살         선비의 청빈함뿐만 아니라 현대의 단절된 관계를 차경
        아 온 그의 삶이 돌, 바람, 물 등 제주도가 가진 물성(공    을 통해 해결하자던 건축가 조성룡의 제안에 대한 이타
        간성)을 바탕으로 시시각각 변모해 가는 건축물의 모습        미 준의 응답처럼 느껴진다.
        (시간성)을 강조함으로써, 터무늬(그 땅의 자취)를 극대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이 다큐를 통해 이타미 준의 건축은 담을 쌓지 않고
        화한 말년의 제주 작업을 통해 정점을 찍었다는 점은         창을 냄으로써 그 땅에서 오랜 시간 터무늬를 공유하며
        역설적이다. 해안가 전통 민가를 연결해 놓은 듯한 지        살아가는 우리들이 함께 누리는 ‘모두의 건축’으로 관객
        붕이 포도 줄기와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문도 없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에게 더욱 다가갈 것이다.
        이 서로의 삶을 나누었던 제주도라는 공동체의 정서를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제공자·박미림 집사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2019년 9월  2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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