Page 5 - 2019년 9월 맑은샘-홈페이지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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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내는 우리나라의 전통은 고대 중국의 왕족으로부           ‘나 자신을 위한 제사’라는 것입니다. 이러한 제도
        터 시작되었습니다. 고대 중국에서는 죽은 왕들에게          가 어떻게 ‘효’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? 진정한 효는
        만 제사를 지내고 기념했습니다. 그런데 춘추전국시          살아계신 부모님께 하는 것입니다. 따라서 우리 그
        대에 접어들면서 유교의 영향으로 모든 인간은 조           리스도인들은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
        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조상숭배 사상이 보편화  부모님께 더욱 효도하며, 믿지 않는 친척들을 위해
        되었습니다. 그리고 A.D 1200년경 중국 송나라의  서 더 헌신적인 삶이 요구됩니다. 그리고 그러한 삶
        ‘주자’라는 사람이 제사 의식을 체계화하였습니다.  을 살게 될 때 다른 믿지 않는 친척들에게 선한 영
        이것을 체계화한 학문이 ‘성리학’입니다. 우리나라          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입니다. 그리스도인은 평소
        는 성리학이 전래한 고려 말엽부터 조상숭배 사상           에 부모님을 위해서 더 공경하고, 궂은일에도 앞장
        이 생겨났습니다. 그리고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 때  서야 합니다.
        성리학을 통치기반으로 삼음으로써 조상 제사는 보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믿지 않는 자들 사이에서 홀로 신앙을 지켜야 하
        편화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습니다. 이 말의 의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는 그리스도인은 추석과 같은 명절이 썩 즐겁지만
        미는 조선 이전의 시대 즉, 삼국시대나 고려 시대(고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은 않을 것입니다. 그러나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가
        려 말 이전)에는 제사 제도가 없었다는 것이죠. 당시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정에 먼저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우릴 축복의 통로
        삼국 시대나 고려 시대의 종교는 불교였습니다. 우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로 사용하시기 위함입니다. 그 길은 분명 외롭지만,
        리나라의 불교는 조선 시대를 지나면서 제사를 지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또 조금은 쓸쓸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
        내기 시작했습니다. 그러나 정통적인 불교 국가에서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. 그리
        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았습니다. 만약 제사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통해서 믿지 않는
        가 효의 상징이라면 조선시대 이전에는 효자가 한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가족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. 믿음의 조상 아브
        사람도 없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.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을 때, 그가 걸어
         효도는 살아 계신 부모님께 하는 것입니다. 하나          갔던 길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. 하지만 그
        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살아 있           길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복된 길이었음을 기억해야
        는 부모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. 죽은 부모를 공         합니다. 바라기는 우리를 통하여서 앞으로 다가올 명
        경하는 것은 절대로 효나 불효의 근거가 될 수 없습         절은 이번 추석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은혜가
        니다. 오히려 죽은 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죽은 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.
        부모를 위함이 아닌 자기 자신의 위로밖에 될 수 없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“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
        습니다. 우리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조상 제사 의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
        식도 실상은 죽은 자를 위한 것 같지만, 그 근간에는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”(창
        죽은 조상으로부터 복을 받고자 하는 ‘기복 사상’이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2:33).
        담겨있는 것입니다. 다시 말해서 조상을 위함이 아닌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2019년 9월  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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