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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앙생활

목회자칼럼

성도는 어떻게 되는가?

이경수 목사

 

최근에 심방을 하면서 어떤 분이 자신은 ‘성도밖에 되지 않는다’ 말하 면서 자신을 아주 작은 자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. 상대적으로 다 른 분들은 ‘집사’이고 ‘권사’이기 때문에 자신보다 더 훌륭한 분들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들었습니다. 그분이 이야기를 하면서 보였던 ‘겸손’한 태 도는 신자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좋은 신앙의 열매이지만, 그분이 가지고 있었던 ‘성도’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얼마나 ‘성도’에 대한 용어를 잘못 이 해하고 사용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습니다. 성경에서는 ‘성도’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직분을 받지 못한 사람을 지칭 하는 단어로 사용하지 않습니다. 보통 교회 구성원을 이루는 신자들을 모 두 아우를 때 그 단어를 사용합니다. 그리고 그 단어 자체가 ‘거룩한 무리 들’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, 이미 그 단어 자체로 매우 고결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. 영어로는 ‘saint’라고 표현되는 이 단어는 가톨릭에서는 아주 특별한 신앙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에게만 쓰는 용어입니다.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그 단어를 모든 신자를 지칭할 때 쓰게 되는데 그것은 인간 이 거룩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노력과 선행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 다.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의를 이루시고, 그 의를 우리의 것을 전가하셨기에 신자들은 ‘하나님의 의’를 입은 자로서 ‘거룩한 무리’ 가 되는 것입니다. 그리하여 모든 신자는 차별 없는 ‘거룩함’을 덧입게 되 는 것이죠. 즉, 성도가 되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는 것 이고 그렇게 의를 덧입은 신자는 ‘성도’로 불리기에 마땅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. 특히 우리를 ‘의롭다 하시기 위해’ 필요한 결정적인 사건은 예수 그리스 도의 ‘부활’이었습니다. 이것을 로마서 4:25절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 다.“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 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.” 여기서 잘 생각하면 조금은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. 예수님은 우리의 죄 값을 치르시기 위해서 ‘죽음’에 이르셨습니다. ‘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’가 바로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죠. 그런데 ‘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다’는 것은 어떻게 2019년 4월 5 이해해야 할까요? 왜 주님의 부활까지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있을까요? 그것은 이렇습니다. 어떤 죄인이 죄를 짓고 감옥에 가게 되었는데, 감옥 에 있는 동안 그 사람은 자기의 죄 값을 다 치른 것이 아닙니다. 감옥에서 나와야 그 죄에 대한 값을 다 치르고 죄와의 관계가 끝나는 것입니다. 만 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 가운데 매여 계셨다면 우리의 죄 값이 완전히 처벌되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. 주님이 죽음에 매여 계시지 않고 부 활하셨기에 우리의 죄 값이 다 치러졌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. 그렇게 우리가 ‘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’은 주님의 죽음과 더 나아가 부 활까지 필요한 것입니다. ‘성도’가 되는 것은 아주 영광스러운 것이요, 인 간이 받을 수 있는 그 어떤 ‘직분’보다도 더 고결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. ‘성도’는 ‘집사’보다 ‘권사’보다 ‘장로’보다 ‘목사’보다 더 낮은 신자를 칭하는 용어가 될 수 없습니다. 우리는 모두 직분을 초월하여 예 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‘성도’가 된 것입니다. 그런데 ‘성도’라는 용어가 보통은 그러한 인식 속에서 쓰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. 처음에 어떤 분이 이야기하셨던 것처럼 아무 직분도 받 지 못한 ‘일개 성도’의 의미로 이 단어를 쓰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. 언어 에는 사회성이 있어서 그 사회가 어떻게 그 단어를 인식하고 사용하는가 가 중요한데, 한국 교회가 ‘성도’에 대한 인식을 그렇게 하고 사용하고 있 기 때문에 ‘성도’에 대한 잘못된 사용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. 이것을 바꾸려면 전 한국 교회의 인식 변화를 가져올 만한 무엇이 필요할 것이고, 그런 특별한 사건이 있기 전에는 ‘성도’는 직분을 받지 못한 신자 를 말하는 의미로 여전히 쓰이게 될 것입니다. 그렇지만 부활절이 있는 4 월을 맞이하여 ‘성도’가 얼마나 거룩하고 아름다운 단어인지를 다시금 생 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. 그리고 그 부활로 인해 우리 모두가 ‘거룩한 무 리’가 된 것을 다시금 생각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소망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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